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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관주님을 뵙기 위해 왔소이다.” 이곽이 백무학관의 관주실을 찾았다.
완공된 지 얼마 안 되어 티끌 하나 없이 깔끔하면서도 웅장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었다.
‘많은 예산을 들인 공이 있구나…….’ 이곽은 무림맹의 1급 간부였지만 백무학관의 관주가 머무는 별채는 자신의 처소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휘황찬란했다.
‘부럽군…’ 그렇게 이곽이 쓴맛을 다시고 있을 때, 안채로 들어갔던 관리인이 부리나케 나와 입을 열었다.
“들어가시지요. 이 대협!” “고맙소이다.” ***
남궁원.
남궁세가의 가주면서도, 백무학관의 총관주로 역임 되었다.
본래 한 가문의 존주는 겸직하지 않는 게 보편적이라 이는 다소 이례적인 일이었다.
때문에, 남궁원의 영향력은 가히 독보적이다.
백년지대계를 총괄하는 백무학관의 관주야말로 무림맹의 다른 간부보다 더 큰 발언권과 지위를 오픈홀덤 가지는 게 당연했다.
때문에, 이곽은 남궁원을 대할 때, 마치 맹주를 대하듯 정중한 자세를 취했다.
“관주님. 별고 없으셨습니까?” “오! 이 대협. 어서 오시오.” 남궁원이 이곽을 자리로 안내했다.
잠시 후, 시비가 따뜻한 차를 내어오고서야 이곽이 본론을 끄집어냈다.

“관주. 제가 찾아온 까닭은 맹주님의 명령을 하달하고 전언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로투스홀짝 이곽이 명령이란 단어에 힘을 주며 말했다.
비록 무림맹의 조직 구도가 수직, 상하라 하나, 관주에게 굳이 명령이란 단어를 강조하는 것은 무례로 비칠 수 있다.
하나 이는 이곽의 철저한 계산에 의한 것이었다.
‘관주는 필시 반대할 거다. 맹주님의 명령임을 인지시킬 필요가 있겠지.’ 다행히 남궁원은 별다른 기색 없이 이곽에게 물었다.
“맹주께서 어떤 말씀을?” “현재 백무학관의 수석 교관 자리가 공석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소. 초대 교관인 점창파의 비도 선생께서 일가의 문제로 은퇴하셨기에 현재는 공석이외다. 하나 차석 교관인 해남파의 종진도 대협께서 그 자리에 오르실 테니, 그 부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오.” 이곽은 남궁원의 말에서 어폐를 느껴, 내심 씁쓸했다.
해석하자면 자신은 백무학관의 간부가 아니니, 개입할 생각도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백무학관을 사유화할 생각인가…’ 하나 이곽은 내색하지 않고 나긋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관주. 제가 방문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맹주님은 백무학관의 수석 교관을 이미 내정하셨습니다.” “내정자라?” “그렇습니다.” 남궁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누구요?” “진소어 소협입니다.” “진… 소어?” 찰나, 남궁원은 상념에 잠겨 골똘히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 이내, 무언가 떠올렸는지 입을 열었다.
“진소어라… 혹시 3, 4년 전쯤 모용세가의 최초 외부제자가 되었다는 그 소년을 말하는 거요?” 남궁원은 소어를 잊지 않았다.

[아버지! 언젠가는 모용세가의 외부제자 녀석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겁니다!] 강호의 천년 기재라 칭송받으며 자타공인 강호 제일 신진고수가 된 아들, 남궁문이 언젠가 했던 말을 떠올린 것이다.
“네. 바로 그 진 소협입니다.” “이것 보시오, 이 대협. 진소어란 아이는 듣기로 내 아들보다 어리다고 했소. 아니오?” “제가 알기로 금년 열아홉이 되었다고…” “허허.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거요? 열아홉 소년을 백무학관의 교관으로 임명한다고? 그것도 그냥 교관이 아닌, 수석 교관으로 말이오?” 남궁원의 태도가 급변하였다.
마치 이곽을 아랫사람 대하듯 했는데, 이곽은 울화가 치밀었지만 누그러뜨리고 다시금 말했다.
“관주. 이건 맹주님의 뜻입니다.” “아무리 맹주님이라도 그렇지… 이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외다! 백무학관은 단순히 무림맹의 하부 기관이 아니오. 정파의 후기지수를 교육하는 양성기관이란 말이오. 때문에, 항상 공정하고 떳떳해야 하거늘……. 만약 그가 수석 교관이 된다면 생도 중 누가 그를 받아들이겠소?” 남궁원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하나 이곽은 굽히지 않고 품속에서 3장의 서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서찰을 남궁원에게 전했다.
“이게 무엇이오, 이 대협.” “진 소협을 백무학관의 수석 교관으로 천거하는 추천장입니다.” 남궁원이 추천장을 받아 세이프게임 들었다.
내용 따윈 읽을 필요가 없다.
어떤 말도 개소리로 들릴 테니까.
그저 남궁원은 과연 누가 이 미친 추천장을 쓴 건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추천장을 읽은 뒤 남궁원의 얼굴은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대 아미파 장문인. 검후, 홍련사태 직인.
-대 곤륜파 태상장로, 현 무림맹주 하원상 직인.
-대 개방 용두방주, 홍인걸 직인.
‘이런 미친…!’ 하마터면 남궁원은 욕을 내뱉을 뻔했다.


“아니 저게 뭐람…?” “미친 거야?” “세상에 제정신인가?” 세이프파워볼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상욕을 내뱉기 시작했다.
소어도 귀가 있으니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아무래도 무리였나…’ 그건 확실히 무리수였다.
반쯤 정신이 나간 녹림도나 사파의 미친 인간이 아니라면 확실히 관도에 호랑이를 끌고 사뿐사뿐 발길을 내딛는 인간은 없을 테니까.

“커흥!”
거기다 한술 더 떠,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느낀 흰둥이는 포효까지 내지르고 말았다.
“어머나!”
“세상에!”
“이것 봐요! 그 호랑이 꽉 붙들어 매라구욧!” 사람들은 경악한 얼굴로 볼멘소리를 터뜨리며 하나둘씩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휴… 흰둥아. 아무래도 우린 팔자 좋게 관도로 길을 갈 수 없는 운명인가보다.” 그렇게 말한 소어가 대뜸 흰둥이를 안아 들었다.
근래 소어도 골격이 장대해져, 늠름했지만 흰둥이를 들쳐메자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킁…”
하나 흰둥이는 그저 좋은지 콧김을 뿜으며 소어의 얼굴을 핥아댔다.
“후…”
소어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쉰 뒤, 힘차게 허공을 날아올랐다.
-파파파!
쾌경보의 출수였다.
대호를 들쳐메고 경공을 펼치는 모습은 정말 쾌경(快鯨)이란 말에 걸맞게 파워볼사이트 욱일승천하는 한 마리의 고래 같았다.


요령.
모용세가.
‘오랜만이구나…’ 멋들어진 필체로 쓰인 모용가의 현판을 보자, 소어의 가슴이 절로 두근대었다.
햇수로 4년.
소어는 다시 모용세가를 찾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소어는 목적 잃은 사람처럼 지냈다.
물론 그간 미친 듯이 태경심법을 연마했기에 내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하였지만, 할아버지가 있을 때의 소어가 무공이란 목표를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나가는 진취적 인간이었다면, 이후는 방향 잃은 난파선 같은 나날을 보낸 것이다.
‘이젠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거야!’ 소어는 그렇게 결심했다.
그런 결심이 없었다면 애당초 삼륜봉 장원을 나서지도 않았을 터였다.
새로운 인생의 2막을 맞게 된 소어는 그렇게 부푼 가슴으로 모용세가의 문을 두드렸다.


“소어야!”
소어를 본 순간, 모용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고는 곧장 소어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백부님…” “와 주었구나, 와 주었어. 고맙다. 정말 고맙다!” 소어는 당혹스러웠다.
백부는 결코, 경거망동하는 법이 없는 묵직한 사내였다.
한데, 자신을 보는 순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반색하니 호들갑도 이런 호들갑이 없다.
하나 이내, 소어는 모용백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뒤, 백부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다.
“정말 모용세가를 힐난하는 탄원이 무림맹에 쏟아졌단 말인가요?” “그렇다. 사람들 인심이란 게 원래 그러하단다. 우리 가문은 아버지 한 사람에게만 의존하는 경향이 컸다.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틈을 놓치지 않고 본가를 물어뜯기 시작한 게지. 아마 더 지나면 본가에 정식으로 비무를 신청하는 무가나 군소방파가 많아질 게다.” “백부님…” 소어는 화가 치밀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정파의 인물들이 저런 작태를 보인단 말인가.
그제야 정파인들을 믿지 말라던 구양선의 말에 수긍이 갔다.
‘무림이란 참으로 혹독한 곳이구나.’ 하나 좌절한다거나, 우울하진 않았다.
왜냐?
이제 자신이 세가의 위신을 세우고 천하에 모용세가가 건재함을, 또한 모용세가가 아무나 함부로 넘볼 수 있는 가문이 아니란 것을 가르쳐 줄 생각이었으니까.
“소어야. 하나 아버지의 명성 덕분에 아직 본가를 생각해주는 강호의 명숙들이 많다. 얼마 전에 무림맹에서 사람이 왔다 갔단다. 맹주께서도 모용세가의 사정을 헤아려 하나의 복안을 내어놓으시더구나. 나는 그를 따르고 싶다.” “백부님, 그게 어떤 거예요?” “바로 네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다.” “제가요?”


“그래.”
“백부님.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겁니다. 최소한 할아버지의 가문이, 이 모용세가가 우스워지는 것만큼은 좌시할 수 없어요.” “고맙구나…” “제가 뭘 하면 되나요?” “무림의 전설들께서 널 백무학관의 수석 교관으로 천거하셨다.” ***
어느새 모용세가의 중진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모용가의 안주인, 연소소는 물론이고 모용화를 비롯한 젊은 층의 인물들까지 가주실로 모여 소어와의 담화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소어야. 네게 거는 기대가 크다.” “네 나이에 백무학관의 교관이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상식 밖의 일이다. 모두가 너를 견제할 테니, 처신에 주의하거라.” “소어야. 잘 해내리라 믿는다!” 가문의 어른들이 소어를 향해 굳은 음성으로 말했다.
소어는 그럴 때마다 비장한 눈으로 고갤 끄덕였다.
“최선을 다할 겁니다. 모용세가의 상황이 좋지 않음을 알았으니, 절대 피하지 않을 거예요. 할아버지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제게 십초무적공을 전수하셨습니다. 이제 이 십초무적공은 모용세가를 위해 쓰일 겁니다. 할아버지와 백부님이 베풀어주신 하해와 같은 은혜. 제가 갚겠습니다.” 소어의 말에 모용백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뿐만아니라, 모용세가의 모든 인물들의 얼굴에 흡족함이 걸렸다.
투신의 죽음 이후, 가문의 쇠퇴를 걱정하던 터였다.
하나 이제 제2의 투신, 소어가 돌아온 이상 그들은 다시 한번 비상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아버지. 소어를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이 아이가 우리 가문을 이끌 겁니다!’ 모용백이 마음속으로 부친에게 읊조렸다.


날이 저물고…….
모처럼 모용세가에서 묵게 된 소어는 잠시나마 과거를 회상했다.
당씨 남매와의 강호 유랑.

팽성운, 석원, 언영제 3인방을 혼내주었던 일.
귀마강시를 때려잡았던 일.
그리고 우천마검 노영명에게 죽임당할 뻔했던 두려운 사건까지.
그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자 문득 가슴 한켠에 그리움이 사무친다.
‘할아버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은은한 보름달이 할아버지의 허허로운 웃음을 닮은 듯하다.
‘할아버지. 모용세가를 지키겠습니다.’ 소어는 그 길만이 할아버지에 대한 은혜를 갚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때.
“소어 대사형!” 모용화가 소어의 곁으로 다가왔다.
“어, 사매. 아직 안 잤어?” “응. 잠이 안 와서. 내일이면 무림맹으로 떠나야 하잖아…” 모용화가 말끝을 흐렸다.
똑 부러지는 성격의 그녀였지만 생전 처음으로 또래 고수들과 동고동락할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 모양.
그러자 소어가, 모용화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사매.”
“대사형…” “아무 걱정하지 마. 우린 결코, 약하지 않아.” “대사형…” 이 순간, 모용화는 천군만마보다도 대사형이 듬직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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