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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모래… 광풍… 귀곡… 산장…!” 소어가 읊조렸다.
마치, 신의 계시처럼 각인되는 울림.
<귀곡산장 지도>를 펼쳤을 때의 기이한 경험이 머릿속에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진소어. 갑자기 왜 그래?” “소영아.” “응?”
“너 방금 소리 못 들었지?” “무슨 소리?” “제1방의 시련…” 소어가 영문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자, 왕소영의 눈에 걱정이 서렸다.
‘왜 이래? 갑자기 미치기라도 한 거야?’ 하나 소어의 얄궂은 물음은 계속 이어졌다.
“저건? 저것도 안 보여?” “뭐가아!” “백색 아지랑이 같은 것이… 천 조각 같기도 하고.” “야! 정신 안 차릴래?” 왕소영이 짜증을 털었다.


괜히 무서운 생각이 든 탓이다.
날은 어두컴컴해지고, 바람은 왜 또 그리 불어대는지.
더구나, 인적 드문 대막을 정처 없이 거니는 중이니 으스스해질 법도 했다.
그러나, 오직 소어에게만 보이는 백색 기체와 정체불명의 음성은 더욱 선명하게 증폭되었다.
[선택받은 자여. 답하라. 그대는 정녕 제1방의 시련에 도전하겠는가?] 소어가 신경을 집중했다.

체내의 모든 기감을 최대로 열어젖히자, 세맥 하나하나가 통통 튀어 오르는 느낌.
그제야 소어는 눈앞의 백색 기체에서 음성이 전해지고 있음을 실시간파워볼 감지했다.
‘구양 형은 <귀곡산장의 지도>를 제작한 사람이 신통한 법력의 소유자일 거라고 했어. 이건 분명 그의 안배다!’ 확실히 희한한 일이었다.
<귀곡산장 지도>를 처음 펼쳤을 때부터 그리 여겼지만, 막상 실제로 닥치자 소어는 저도 모르게 온몸의 닭살이 돋았다.
‘그때 내가 꾸었던 꿈… 모래 광풍과 <귀곡산장>이란 현판… 다 오늘을 암시한 건가?’ 그런 생각을 할 때, 소어의 기억 속에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소어야.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미지의 영역을 수도 없이 접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어리석은 인간은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는 대신, 스스로의 관념으로 그를 정의하게 되지. 나 역시 그랬다. 하나 늘그막에 접어드니 후회가 되는구나. 너는 그런 삶을 살지 말거라. 모르는 게 있으면 직접 부딪혀 깨달으면 그뿐이다.
‘그래. 막상 부딪쳐 보면 별거 아닐 거다!’ 할아버지를 생각하자 용기가 샘솟는다.
‘어려울수록 단순하게.’ 우스운 줄 알면서도 소어는 아지랑이처럼 꿈틀대는 백색 기체를 향해 외쳤다.
“제1방의 시련에 도전한다.” 그러자 놀랍게도, [선택받은 자여. 따르라…….] 살아 숨 쉬는 인간처럼 백색 기체가 소어의 말에 대답하는 것이었다.

휘이잉……!
거센 모래바람이 일었다.
동시에 백색 기체는 푸른 빛무리를 잔상처럼 흩뿌리며 어디론가 홀연히 날아가기 파워볼사이트 시작했다.
“소영아.” “야… 소어야, 나 무섭다. 이상한 소리 그만 좀 해라.” “알아, 얼떨떨하지? 나도 그런데, 네가 왜 안 그렇겠냐.” “…….” “미친놈 같아?” “응. 완전.” “미친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설명은 나중에 해줄 테니까, 일단 가자.” “어딜?!” “보물 찾으러.” ***
한참을 뛰었다.
아니, 날았다.
가뜩이나 힘든 탓에, 휴식 좀 취하려 했거늘 목적지도 모른 채, 쾌경보를 펼치려니 짜증도 치밀었다.
그렇게 반 시진 정도 전속력으로 달리자, 이질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여기 사막 맞아?!” “완전 운남 같은데?” “소영이 너, 운남도 가봤냐? 북해에서 운남이면 말 타고 최소 1년 거린데?” “아니, 듣기만 들었지. 운남은 고온다습하고 곳곳에 흉험한 맹수들과 이무기만 한 뱀이 득실거린다잖아.” “난 또, 가 본 줄 알았네.” 핀잔했지만, 사실 소어도 공감하는 바였다.
백색 기체를 따라 거대한 협곡 하나를 넘자, 도저히 사막이라고 믿기 힘든 장소가 나타난 것이다.
기후도 그러하거니와 사방으로 뻗친 야자수(椰子樹)와 축축한 지면은 운남을 연상케 하는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그 순간.
백색 기체가 돌연, 비행을 멈추더니 거대한 호숫가에 유유히 떠올라 다시금 푸른 빛을 뿜어냈다.

[선택받은 자여. 이곳으로 들어가라!] “뭐야? 여긴 호수인데, 내가 무슨 물고기도 아니고…” [선택받은 자여. 이곳으로 들어가라!] 여전히 백색 기체는 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
“진소어. 대체 뭔 소리야? 알아듣게 말이라도 해줘야 할 거 아냐. 너 정말 미친 거 아니지? 그런 거지?” 더불어 왕소영도 혼잣말하는 소어를 나무라자, 소어는 미칠 지경이 되었다.
“소영아. 일단 갔다 와 볼게.” “어딜?!” “나중에. 나중에 다 설명해 줄 테니까 파워볼게임 꼼짝하지 말고 기다려.” “아니, 어디로 가겠다는…… 야!” -풍덩!
소어가 호수 속으로 몸을 날렸다.


‘이게…!’ 너무 놀라운 일을 겪으면 외려 침착하다던가.
지금 소어가 딱 그렇다.
기공에 자신 있던 터라, 물속에서도 어느 정도 버틸 각오를 다진 뒤 뛰어들었건만.
백색 기체가 소어의 몸을 감싸더니 원형의 투명한 장막이 되어 하나의 보호막이 된 것이다.
숭숭숭…!
소어를 감싼 투명 장막은 그렇게 한참을 아래로, 아래로 향했다.
덕분에 소어의 눈은 더욱 동그래질 수밖에 없었다.

망망대해도 아닐진대, 호수의 수심이 끝도 없었던 엔트리파워볼 탓이다.
‘허… 참, 기가 막힐 노릇이네.’ 은근히 걱정도 된다.
위지 할아버지도 그러지 않았던가.
<귀곡산장>은 천하의 용담호혈이니 무공이 천지를 진동시킬 때가 되었을 때야 찾아 나서라고.
‘괴물 같은 거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그것은 깊은 심연이었고,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뭐야…’ 어둠이 소어의 시야를 완전히 잠식했을 때.
촤아아…!

거대한 물살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동굴인가…” 소어가 다다른 곳은 거대한 석굴이었다.
빛이 거의 들지 않는 곳이라 굉장히 어두웠지만, 다행히 소어의 안력(眼力)은 EOS파워볼 범인의 상상을 초월했기에 사물을 식별하는 데 지장이 없었다.
[선택받은 자여. 제1방의 시련을 시작하겠노라. 그대는 정녕, 후회하지 않을 텐가?] “이까지 왔을 땐, 그만한 각오가 있어서지. 못 먹어도, 간다!” 소어가 호기롭게 외쳤다.
외치면서도 웃음이 삐질삐질 삐져나온다.
‘이게 참, 뭐 하는 짓이람. 하하.’ 어느새 미지에 대한 두려움보다 빨리 시련인지 나발인지 후딱 맞닥뜨리고 싶단 생각만 들 뿐이다.
그때.
스스스스스스…!
기이한 괴음이 귓가를 스치더니 석굴의 사방이 흔들리는 게 아닌가?
“어… 어?!” 마치 시공간이 비틀리는 듯한 광경.
[부디 시련을 극복하라!] 동시에 소어의 주변으로 오색의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후…’ 소어는 연기가 범상치 않은 것임을 직감했다.
숨을 들이마시기 무섭게 정신이 혼미해진 까닭이다.
‘위험한 연기야!’ 그랬다.
이것은 귀곡산장을 만든 최초의 술법사가 설치한 하나의 장치로써, 환청, 환영, 환각을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마약류의 기체였던 것.

아니나 다를까, 삽시간에 소어의 시각, 청각, 촉각, 후각을 넘어 생각에 이르기까지 환각 상태가 일어났다.
“호호호! 공자, 소녀를 안아주시와요!” 처음에는 반나체의 아리따운 여인이 참기 힘든 색기를 풍기며 귓가를 간질이더니, “클클. 아직도 숨이 붙어 있는 것이냐? 오늘은 기필코 노부가 너를 죽여주마!” 어느덧, 소어를 죽음에 빠뜨릴 뻔했던 숙적, 바로 우천마검 노영명이 나타나 목에 검을 겨누었다.
‘아…’ 소어의 신형이 비틀거렸다.
살아오면서 느꼈던, 그러나 기억 저편에 묻어 놓았던 모든 직, 간접의 경험과 상상, 두려움과 공포가 실체화되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 안 돼. 이건… 이건 환각일 뿐이다…’ 하나, 정신을 바로 잡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마치 수면 중 가위를 눌린 것 같은 기분.
그때.
다행히도 머릿속에 할아버지의 가르침이 다시금 상기되었다.
-태경심법은 구양진경처럼 양강하지도, 구음진경처럼 기묘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위지 늙은이의 천마신공처럼 단기간 대단한 폭발력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하나 소어야. 이 할아비는 자부한다. 태경심법은 가히 최강의 내가기공법이다. 그 이유를 아느냐?
-뭔데요? 할아버지?
-그것은 바로, 태경심법이 가장 정순하고 웅혼하며 티 없이 맑기 때문이지.

-아…
-태경심법은 단순히 내공을 쌓기 위해 수련하는 게 아니란다. 한 인간의 모든 신체발부와 정신, 나아가서 영혼을 정제하는 심신 수양의 총괄이니라.
-할아버지…
-인간은 하나의 소우주(小宇宙). 느끼지 못할 뿐, 사실 인간은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모두 품은 전지적 존재란다. 태경심법은 네 안에 침잠한 우주를 일깨워 줄 것이다!
“헉!!” 기억 속에서 할아버지와 나눈 담화는 그야말로 한편의 짤막한 꿈처럼 빠르게 흩어졌다.
하나 그 기억이 번뜩 정신을 일깨웠다.
‘태경심법이다! 나는 태경심법을 지난 1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수련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누구보다, 독하게!’ 생각이 미치기 무섭게, 소어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를 시작했다.
고오오오오!
그러자 어느새 소어를 어지럽히던 괴랄한 음성들이 점차로 잦아들었다.

‘나는…’ 단전에서 시작된 태경(큰 고래)의 기운은 중단, 상단에 이어, 전신으로 뻗어져 나갔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 알맞은 기운이 전신의 혈도를 일주하자 신음도, 고통도, 번민도 사라진다.
‘할아버지의 제자니까. 투신의, 제자니까.’ 스스스…!
소어의 백회혈에서 김이 모락모락 뿜어져 나왔다.
그렇게 신체, 모든 곳에 태경의 힘이 닿아 눈을 떴을 때.
“역시!” 소어를 괴롭히던 환영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슥, 스슥!
등 뒤에 부적이 붙은 사람 형상의 하얀 종이만이 요란한 몸짓을 하며 아른거리는 게 아닌가!
‘이런 요사스러운 술법을 봤나?’ 소어는 일어나 생물처럼 움직이는 종이로 다가가, 찍찍!
단숨에 그것들을 찢어버렸다.
그러자 다시금 푸른 광휘를 머금은 백색 기체가 나타났다.
[그대는 제1방의 시련을 극복했노라.] “엇?!” 눈부신 빛이었다.

태양마저도 오롯하게 바라볼 수 있는 천의 안력을 지닌 소어조차도 제대로 식별키 힘든 백광(白光)!
그 백광은 몇 차례 명멸하며 자그마한 사각 형태로 응축되기 시작했는데 이내, 빛이 사라짐과 동시에 소어의 눈앞에 네모난 목각상자가 나타났다.
“이게 바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귀곡산장 지도>에 대한 기억은 대체로 어렴풋했지만, 몇 가지만큼은 확연히 떠올랐는데 그건 바로 귀곡산장의 보상 목록이었다.
-제1방의 시련을 극복하는 자에겐 ‘태청무극신단’이 주어질 것이다.
-제2방의 시련을 극복하는 자에겐 ‘금강동인신단’이 주어질 것이다.
-제3방의 시련을 극복하는 자에겐 ‘만류귀종신단’이 주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게 태청무극신단이다!” 태청무극신단!
어떤 건지 소어도 모른다.

하나 바보가 아닌 이상, “이름만 들어도 초대박의 영약이겠지. 암, 그렇고말고. 하하하!” 망설일 필요?
아니, 그럴 여유조차 없다.
소어는 당장 목각상자를 열어젖혔다.
그러자 예상대로 둥근 환약 하나가 들어 있었는데, 삽시간에 그윽하고 깊이 있는 약 내음이 코를 찔러왔다.
꿀꺽!
소어는 전광석화 같이 환약을 집어삼켰다.
“맛 좋고!” 맛이 좋았다.
“향도 좋고!” 향도 좋았다.
그리고…….
“어… 어?!” 먹자마자 이런 황홀한 기분이 드는 영단은 처음.
소어는 어릴 적 위지 할아버지를 통해 소환단도 복용해 봤고, 할아버지가 제조한 단약도 수차례 먹어봤지만, 그것들과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러다 이내, “크아아악!” 격통이 찾아왔다.
소어는 태경심법을 이용해 고통을 흩트렸으나 작열감에 가까운 통증이었기에 쉬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꽈드득.
동시에 온몸의 뼈 마디마디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투툭, 투투둑.
잇몸이 허물 거리더니, 치아도 뽑혀 나갔고, 츠츠츠…!
머리카락마저 타들어 가는 게 아닌가?
“갑자기 뭐야, 젠장!” 절로 욕이 터져 나온다.
-꽈드득, 꽈드드드득!
투둑, 투두둑.
츠츠츠…!
고통의 반복.
인내력하면 어딜 가도 빠지지 않는 소어조차 이럴 지경이었으니, 웬만한 독종이 아니라면 혼절을 해도 열두 번은 더 했을 터다.
하지만,
‘뼈가… 새로 자라나는 느낌인데?’ 두 손으로 타들어 간 머리를 쓰다듬으니 분명 민두여야 할 머리엔 치렁치렁한 흑발이 다시금 돋아나 있는 게 아닌가?
더구나,
“아아!” 뽑혀 나간 치아마저 어느새 새로이 자리 잡아 잇몸을 채운 상태다.
‘이거 설마…?’ 설마.
“환골탈태(換骨奪胎)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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