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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뼛속을 파고드는 바람
잠시 후, 진축은 섭정왕의 차가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왕부로 가서 준비해 둔 마차를 물리라고 전하라. 영흥후가 돌아와 마차를 빌려 달라고 애원해도 빌려주지 말고.” 진축이 말했다.
“네, 전하.”
진축은 말을 마치자마자 바람처럼 사라졌다.
평온하던 마차 안에 폭풍우가 몰아쳤다.
섭정왕의 얼굴은 스산하게 바뀌어 있었다. 꼼지락거리던 손가락도 언제부터인가 주먹 쥔 손으로 바뀌었다.

‘탄탄대로를 버려두고 가시밭길을 가려고 하다니, 어리석은 놈!’ 섭정왕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애송이가 고생을 사서 하겠다니 나 같은 호인이 말릴 이유는 없지. 충분히 고생하게 내버려 두는 수밖에!’ 섭정왕이 분노를 삭이고 있을 때였다. 마차바퀴가 조금 덜컹거렸다. 그 바람에 마차도 조금 흔들렸다.
마부는 마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스산한 목소리를 들었다.
“마차를 제대로 몰지 못하면 돌아가서 다른 마부로 갈아치울 것이다.” 담담한 말투였고 목소리에도 고저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얼음송곳으로 심장을 찔러 대는 것처럼 아팠다.
식겁한 마부는 하마터면 고삐를 놓칠 뻔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공포에 휩싸인 마부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마부는 말을 진정시켰다. 이제 사소한 문제도 용납해서는 안 되었다.
마부는 황송해하며 말했다.

“전하, 모두 쇤네의 잘못입니다. 돌아가면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마차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마부는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온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살을 에는 추위와 눈발이 날리는 밤인데도 마부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지만 마부의 처지는 심균당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심균당의 기마술은 아주 능숙한 편은 아니었다.
날이 춥고 무릎까지 오는 눈밭에서 말을 타는 것은 그에게 쉽지 않았다.
안전을 위해 심균당은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여 조심스럽게 말을 몰았다.
자제력이 뛰어나고 침착한 덕분인지 심균당은 결국 황궁의 남문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등불이 비추는 남문 편액이 또렷이 보였다.

심균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감이 일순간 사라지자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고통이 신경과 대뇌를 파고들었다.
긴장이 풀린 심균당은 순간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의식적으로 고삐를 꼭 쥐고 있어 다행히 낙마 사고는 피할 수 있었다.
줄곧 뒤따라온 장수가 심균당을 보고 깜짝 놀라 가슴을 쓸어내렸다.
장수는 한달음에 심균당 곁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심균당은 의식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몸을 추슬렀다.
장수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에서 내렸다.
잰걸음으로 심균당에게 다가간 장수는 주인의 말고삐를 쥐며 말했다.
“나리, 쇤네가 부축해드릴 테니 말에서 내리시지요.” 심균당은 몸이 꽁꽁 언 데다가 어지러움까지 느끼고 있었다.
심균당은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며 장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장수의 힘을 빌려 심균당은 미끄러지듯 말에서 내렸다.
사슴가죽 장화를 신은 심균당의 발이 눈밭에 푹 파묻혔다.

무릎이 꺾이며 심균당은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장수가 힘이 센 덕분에 심균당은 쓰러지는 것까지는 간신히 모면할 수 있다.
장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나리!” 파워볼사이트
심균당은 힘겹게 몸의 균형을 잡고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말 위에서 찬바람을 오랫동안 맞았더니 몸이 굳었을 뿐이야. 조금 있으면 나아지겠지.” 장수는 주인이 안쓰럽게 여겨졌다.
하지만 장수에게는 심균당을 도울 방법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대조회에 참석하려는 관리들이 탄 마차가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마차에서 주인들이 내릴 때 수종들이 도왔다.
궁문 앞까지 따라온 수종들은 주인들에게 손난로 두 개와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간식을 챙겨 주었다.

심균당은 중간에 마차를 내팽개치고 말을 타고 왔기 때문에 아무것도 가지고 갈 게 없었다.
커다란 궁문 앞까지 따라온 사람은 장수와 호위무사들뿐이었다. 파워볼게임
그리고 그들에게는 몸을 따뜻하게 할 만한 물건이 없었다.
한쪽에 멀뚱히 서 있는 진소 대장과 호위무사들은 더욱 어쩔 줄 몰라 했다.
진소 대장은 세심하지 못해 심균당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했다.
마차가 못 쓰게 되었을 때 섭정왕에게 도움을 청하자는 ‘망언’을 했었기 때문에 진소 대장은 더욱 심균당에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난감했다.
진소 대장은 겸연쩍은 듯 얼굴과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장수는 진소 대장을 보자 화가 났다.
“진소 대장, 뭘 멍하니 서 있는 거예요. 빨리 방법을 좀 생각해 보세요!” 진소 대장은 함부로 의견을 낼 수 없어 한참 고민하다가 말했다.
“내 피풍의를 나리에게 입히세.”

진소 대장은 피풍의를 풀려고 했다.
장수는 깜짝 놀라 진소 대장을 막았다.
“아니에요. 어서 다시 입으세요. 무슨 옷감으로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대장이 오랫동안 입어 냄새가 난다고요. 그런 피풍의를 어떻게 나리한테 입혀요!” “그럼 어쩌란 말이야.”
머리에 방한용 털모자를 쓰고 있지 않았다면 진소 대장은 머리를 박박 긁어 댔을 것이다.
“됐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저쪽에 가서 기다리세요.” 장수는 진소 대장을 혐오스럽다는 듯 쳐다보며 멀리 밀쳐 냈다.
장수는 심균당을 부축해 궁문 옆 구석진 곳으로 이동했다.
눈이 점점 더 많이 내린 탓에 바닥에는 눈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하지만 구석에는 처마가 드리워져 있어 바람도 세차지 않았고 바닥에 쌓인 눈도 많지 않았다.
말에서 내려 몇 걸음 떼는 동안 심균당은 조금씩 감각을 되찾아 갔다.
심균당은 손을 꼼지락거려 보았다. 품고 있던 손난로 두 개를 꺼내 장수에게 건네며 말했다.
“가져가.” 엔트리파워볼
장수는 손난로를 건네받았다. 그는 주인이 몹시 안쓰러웠다.
손난로는 이미 차갑게 식어 있어 전혀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차갑게 식어 버린 쇳조각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온 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손난로에는 숯을 많이 넣을 수 없었고 심균당은 찬바람을 맞으며 말을 몰고 왔다. 그래서 짧은 시간에 금방 숯이 꺼져 버리고 말았다.
“나리, 쇤네가 다른 대인들께 몸을 따뜻하게 해 줄 물건을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볼까요? 방한 물품을 구하지는 못해도 뜨거운 차는 마실 수 있는 것 같은데요.” 심균당은 찬바람을 맞아 뺨이 빨개져 있었다. 다른 곳은 백지장처럼 창백해 대조가 분명했다. 그런 탓에 안색이 더 나빠 보였다.
심균당은 손을 휘휘 저었다.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지금 마차를 타고 도착한 관리들을 알지도 못하잖아.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어. 더구나 우리가 거지도 아니잖아. 뜨거운 차를 구걸하다니 그게 무슨 꼴이야. 우리 영흥후부가 조정 관리들의 웃음거리가 될 거라고.” 장수는 심균당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인이 추위에 떠는 모습을 보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심균당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영흥후부는 난리가 날 터였다.
“장 장군이라도 마주치면 좋으련만…… 장 장군이 도와주면 나리와 영흥후부가 모두 무사할 터인데…….” 장수는 중얼거리며 기도했다.
장수의 입에서 장진천의 이름이 나오자 심균당의 표정이 밝아졌다.
지금 장진천이 곁에 있다면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며칠 전 장진천이 영흥후부에 사람을 보내 소식을 전해 왔다. 파견 임무를 맡아 병사를 이끌고 인근 성에 가야 해서 이번 대조회에는 참석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장진천이 파견 임무만 맡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오늘 대조회에서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심균당도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장 형님은 정말 좋은 분이야. 하지만 며칠 동안 연경성에는 없을 거라고 하셨어.” 장수도 아쉬워했다. 기대가 사라지자 그의 눈빛도 따라서 어두워졌다.
그때 황궁 남문 앞에는 대조회에 참석하러 온 관리들이 점점 많아졌다. 눈이 많이 내려 시간을 지체한 탓인지 그들은 모두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관리 중에 마차를 타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차에서 내릴 때도 하인의 도움을 받았고 바쁜 와중에도 필요한 물건을 다 챙겼다.
길을 지나가는 마차는 궁문 옆에 서 있는 심균당을 지나쳤다. EOS파워볼
마차에 탄 관리들은 대부분 심균당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 한 마디씩 툭 말을 던졌다.
“누구지? 이 날씨에 말을 타고 대조회에 참석하러 온 건가? 마차도 못 살 만큼 가난한 거야?” “에잉, 뭐야? 완전 꽁꽁 얼었구먼.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다니, 하하하!” “경험이 없는 신출내기가 틀림없어. 이런 날에 말을 타고 오다니. 이따가 조회가 끝나면 바로 태의원으로 가야 할걸. 쯧쯧쯧.” 그 소리들이 귓가에 윙윙거렸다. 심균당은 소리가 어디서 오는지 분간하기 어려웠고 머리도 혼란스러웠다.
그때 궁문 앞에서 소란이 일었다.
뒤이어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섭정왕의 마차가 왔으니 어서 비키자고.” 시장바닥처럼 복작대던 황궁 남문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남문 앞에 모여 있던 마차들은 누군가 교통을 정리하는 것처럼 두 갈래로 쫙 갈라져 중간에 넓은 길을 만들었다.
잠시 후 검은색 마차가 멀리서 다가왔다. 마차를 끄는 최고급 말 네 마리는 훌륭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마차를 호위하며 따라오는 시위들도 위풍당당했다. 검을 차고 갑옷을 입은 시위들은 한껏 위엄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 위용이 대단해 사람들은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진천화는 말을 타고 근접거리에서 마차를 호위했다.

진천화는 남문 주위를 쓱 둘러보았다.
그러다 구석에 서 있는 심균당도 보였다. 흠뻑 젖은 채 밖으로 쫓겨난 새끼 고양이 같았다.
진천화는 눈살을 찌푸리며 마차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가볍게 마차 창문을 두 번 두드렸다.
“전하, 영흥후가 문 앞에 있습니다.” 섭정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마차 안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자 진천화는 주위가 소란해 섭정왕이 자기 말을 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진천화가 다시 보고하려는데 섭정왕이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차를 천천히 몰아라. 영흥후에게 가까이 가서 어떤지 자세히 살펴보라. 접촉은 하지 말고.” 진천화는 섭정왕의 명에 따라 마부에게 마차를 천천히 몰라고 지시했다.
말을 몰고 가던 진천화는 섭정왕이 방금 한 말을 곱씹어 보았다. 로투스바카라
‘영흥후가 어떤지 자세히 살펴보는데 접촉은 하지 말라고? 그게 무슨 뜻이지? 주위를 한 바퀴 돌다가 영흥후가 알아보고 먼저 나한테 다가오도록 유도하라는 건가?’ 고민에 빠졌던 진천화는 순간 크게 깨달았다.
섭정왕은 영흥후가 진천화를 알아보게 하려는 게 아니었다.
영흥후가 섭정왕을 알아보고 도움을 청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흥분한 진천화는 자기 허벅지를 세게 내리치려고 했다. 그러나 남문 앞에는 보는 눈이 많아 감정을 드러내기가 적절하지 못했다.
진천화는 헛기침을 한두 번 한 다음 부하에게 섭정왕의 마차 호위를 맡겼다. 그런 후 그는 대열에서 멀찍이 벗어났다.
주위 사람들은 진천화가 왜 대열에서 벗어나는지 몰랐다.
하지만 진천화가 섭정왕을 그림자처럼 따르는 심복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관리들은 진천화를 알아보고 친근하게 인사말을 건넸다.
“진 장군, 안녕하십니까!”
“진 장군, 그동안 잘 지냈소?”

진천화는 낯익은 관리에게만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낯선 관리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진천화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심균당 쪽으로 말을 몰아갔다. 남문 앞에 몰려 있던 사람들은 그에게 길을 터 주었다. 그러자 양옆으로 사람들이 밀착되었다.
심균당은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구석에서 추위를 피하며 쉬고 있었다. 그런데 섭정왕의 마차가 오자 남문 앞에 사람이 더 몰렸다.
심균당은 다른 사람들한테 떠밀리지 않으려고 더 안쪽 구석으로 물러났다.
장수와 진소 대장 등한테 호위를 받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인파에 떠밀렸다면 마차들이 즐비한 곳까지 밀려 갈 뻔했다.
심균당은 춥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했다.
‘오늘 재수 한번 더럽게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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